[복상설교]충만한 존재로 살기, ‘카르페 디엠(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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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존재와 삶이 하나입니다. 사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요 존재하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한국의 봄을 수놓는 진달래를 보세요. 진달래는 소나무나 플라타너스처럼 키가 크지 않다고 불평하는 법이 없습니다. 키 큰 나무들 속에 못난이처럼 숨어 있지만 한 번도 소나무가 되겠다고 몸부림치지 않습니다. 그저 봄이면 제일 먼저 산을 붉게 물들이는 것으로 한없이 행복해 합니다. 진달래는 오히려 키 큰 나무들 속에 숨어서 피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더 빛이 납니다. 목련처럼 꽃잎이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 않지만 진달래만의 멋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진달래는 진달래로서 훌륭하게 존재하며 삽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은 존재만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뭔가를 성취해야만 만족해 합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소유해야만 비로소 웃습니다. 사람은 자기 존재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유와 성취를 향해서 내달립니다.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나는 왜 키가 작은 거냐고, 장동건처럼 꽃미남이 아니냐고, 삼성 회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여, 사는 게 힘들고 피곤합니다. 이런 인간을 향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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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재만으로도 충분한데 존재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취하겠다고 뛰어다니다가 나도 죽이고 너도 죽이고 있지 않습니까. 욕망이 존재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를 파괴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생의 슬픈 현실입니다. 이런 슬픈 인생을 향해서 주님은 존재의 충분함을 역설하셨습니다. 이미 충분하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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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어떤 것인지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기억하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란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너와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거야. 니콜라이야, 바로 이 세 가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란다. 그게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야." 저는 톨스토이가 말한 것이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 언덕 위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며 사는 것, 그것이 정말 사는 것이고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그런데 사람들은 한결 같이 내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이 세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산다고.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를 살지 못합니다. 교실에 앉아 있지만 친구하고 영화 본 생각하고 있는 학생. 밥을 먹고 있지만 눈과 마음은 온통 텔레비전 연속극에 빠져 있는 가족. 산책을 하면서 사업 구상을 하고 있는 사람. 이렇게 몸과 마음이 따로 입니다. 현재 속에 미래가 들어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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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현종은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는지도 모르는데…
그 때 그 사람이
그 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는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아! 정녕 그러합니다!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수만 있다면 모든 순간은 다 꽃봉오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 앞에 충만한 것들로 꽉 채워 놓았습니다. 더 나은 무언가를 찾아 뛰어다닐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모든 것이 충만합니다. 뭔가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실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존재만으로도 충분한데 존재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취하겠다고 뛰어다니다가 나도 죽이고 너도 죽이고 있지 않습니까. 욕망이 존재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를 파괴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생의 슬픈 현실입니다. 이런 슬픈 인생을 향해서 주님은 존재의 충분함을 역설하셨습니다. 이미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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