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았음이란,,
어제 누가 모임때 배간사님 말씀을 들은 바에 지난 주 큐티했던 내용들을 덧붙여 정리.
<은혜 받았음이란..>
큰 은혜를 받았음은 그것을 자랑하는데서 그치는게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한다.
초대 교인들의 모습과 사도바울의 말씀을 보자.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행 4:31-42)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초대 교인들은 성령충만한 은혜를 받고 부자가 되어 세상 권능을 누린 것이 아니라 그 은혜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 주었다. 서로가 받은 축복을 통용하고 나누었다. 사도바울 또한 이 은혜 나눔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은혜를 넘치게 주심은 그것은 우리가 배부르고 우리만 평안하라는 것이아니라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는 바가 그것이다. 왜 이렇게 해야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좇는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또한 그들이 바랬던 하나님의 권능은 세상에서 부와 명예로 대변되는 그런 권능이 아니라 어떤 환난과 역경가운데서도 담대히 주의 말씀을 전하며 주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권능이었다. 이것이 축복받은 삶, 신자의 권능있는 삶이지 우리가 부자되고, 명예롭게 되는 것이 축복과 권능은 아니다. 그것은 아주 주변적인 것이다. 그런 주변적인 권능과 축복이 우리 삶의 중심부로 스며들 수록,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다. 세상의 권능은 드러나고 하나님의 권능은 감추인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7,29)
하나님은 약한 우리를 부르셨다. 정말 세상이 보기에는 미련하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우리의 그런 점들을 들어 사용하신다. 우리가 약한 그때가 우리의 강할 때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때에 우리의 강함이 되어주시기 떄문이다. 우리에게 강하라고, 권능을 부리라고 요구하시지 않고 스스로 강함이 되어주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태생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가진 자연적인 은사와 권능만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 없다. 그것은 믿지않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초자연적으로 회복된 관계에 근거해서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모습으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야한다. 우리의 강함이 아닌 약함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한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9,10)
새로 시작하는 한주,,, 내가 받은 넉넉한 은혜가 나의 가난하여짐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풍성할 수 있길 바라고, 나의 약함이 도리어 나의 기쁨과 소망이 될 수 있길바란다. 나의 어떠함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부르심 받았음을 기억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내 몸에 지니고(stigma)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끝까지 사랑할 줄 아는 나의 삶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이 소망에 거짓이 있을지라도, 가식이 있을지라도 여기에 조그만 진심이 담겨 있는 것이라면 이 또한 주께서 온전한 진실됨으로 바꿔주시리라 믿는다. 그렇게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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