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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대운하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나름 짐작이 간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발휘, 청계천을 옆으로 누운 분수로 만들고 나서 국내외에서 받았던 온갖 상찬의 달콤함을 왜 다시 맛보고 싶지 않겠는가. (사진제공 경부운하저지국민행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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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대통령과 함께 하는 새해는 어떠신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 회춘의 기쁨을 만끽하고 계신지. 아무리 비리로 떡칠을 했다 하더라도 “아무렴 어때. 경제를 살린다는데…”라는 말이 보여주듯 돈만 더 벌게 해준다면 도덕성 같은 것쯤 상관없다는 양반들이야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겠지만 나 같이 옹졸한 치에겐 경제가 한국판 시민종교가 된 상황이 못내 불편하다.
독자들은 아마 황우석 줄기세포 연구 논란이 한창일 때 벌어진 TV 토론에서 모 일간지 의학전문기자가 했던 말을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황우석의 잘못을 지적하는 상대편 토론자를 반박하면서 그는 “진실보다는 국익이 중요하다”고 했고 이 저주 받을 명언은 작년 대선에서 "도덕성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말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이명박의 당선은 황우석 사태 때 그가 저지른 파렴치한 사기행각에도 불구하고 그가 국가를 먹여 살릴 거라며 연구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일었을 때부터 예견되었던 것이 아닐까.
이왕지사 대통령이 된 거 하나님 영광 덜 가리게 하소서, 아무쪼록 이명박 장로님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빌고 빌지만 벌써부터 영어몰입교육이니 통일부․여성부․농진청 폐지니 해서 인수위가 사고치고 다니는 걸 보니 오늘은 또 무슨 일이 터지려나 불안하기 그지없다. 그 불안함 중에서도 내 영혼 깊은 곳을 흔들 정도로 염려스러운 것이 바로 한반도 대운하다.
시각주의와 개발주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대운하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나름 짐작이 간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발휘, 청계천을 옆으로 누운 분수로 만들고 나서 국내외에서 받았던 온갖 상찬의 달콤함을 왜 다시 맛보고 싶지 않겠는가. 강준만 교수에 의하면 이 당선자는 이미 2005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있다. 그 분은 경부고속도로나 거대 공업단지처럼 눈에 보이는 업적을 남겼다. 사람은 눈으로 보면 가장 확실하게 설득 당한다."며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성과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나의 전략"이라고 밝히신 분이니만큼 청계천에 이어 대운하를 차기 히트송으로 미는 것은 당연한 순서렷다. 화끈한 개발만을 업적으로 쳐주는 국민들의 시각주의 성향에 더해 우리네 특유의 급한 성질머리가 맞물린 결과는 이명박식 개발주의에 대한 열광이요,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복지, 평화, 생태, 통일에 대한 시큰둥함이다.
성경에도 시각주의자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나온다. 모세가 산에 올라간 동안 아론에게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달라고 했던 백성들이 그렇고,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화끈한 대결을 벌이고 나서야 여호와를 인정하는 백성들이 그렇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에게 매직 쇼를 요구했던 바리새인과 헤롯이 그렇고,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주면 족하겠다고 한 빌립이 그렇다. 오늘날 교회가 물량주의에 빠져 화려한 예배당을 짓고, 전시적인 행사를 하고, 교인수와 헌금에 집착하는 것도 다 일종의 종교적 시각주의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 할 시대가 되었다. 제도화된 교회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교회론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the ecclesiologically invisible), 800만 비정규직과 농민들처럼 FTA가 체결되고 나면 더욱 고통을 받게 될 사회정치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the socio-politically invisible), 그리고 대운하가 강행되면 죽음으로 내몰릴 생태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소소한 피조물들(the ecologically invisible)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을지도 모른다.
토건마피아와 토건체제 그렇다면 사회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운하를 임기 내에 완공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표명하고 있는 것이 단지 대통령 개인이 치적에 대한 욕심으로 몸이 달아올랐기 때문일까. 문제의 본질은 늘 그렇듯이 맘몬 숭배에 있다. 정치인, 관료, 토목건설업자가 대규모 개발사업을 통해 얻어지는 더러운 이(利)를 탐하며―우리나라 부패의 60%가 토건 관련 비리란다―대운하를 추진하면 이들 ‘정관업’ 3자와 결탁돼 있는 학자와 언론은 운하 건설의 타당성을 그럴듯하게 포장, 승인함으로 떡고물을 얻어먹는다. 이런 일에 빠질 리 없는 지방토호들이 발호하고 개발이란 말에 눈먼 주민들이 호응한다. 부동산 미꾸라지들도 악다구니처럼 달라붙어 단물을 빨아먹는다. 벌써부터 운하예정지의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처럼 ‘공익’을 내걸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만 ‘사익’을 위해 무분별한 개발을 추진하여 국토를 파괴하고 혈세를 탕진하는 이들 양아치들을 흔히 토건마피아라고 부르며 이들이 주인 된 나라를 토건국가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토건국가체제는 박정희가 대형 건설 사업을 통해 경제성장을 꾀하던 당대의 토건국가 일본을 좇아가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내내 확장일로를 걸어오다가 노무현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참여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오십보백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노무현이 한나라당의 유일한 지지를 받았던 한미 FTA 체결에 그토록 열성을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토건마피아의 지평을 확대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행정복합도시는 그렇다고 쳐도 온갖 혁신도시, 기술도시에 무분별한 수도권 신도시, 그리고 감사원에서 사실상 폐기를 요구했던 한탄강댐 건설계획까지 되살려 착공하는 만용을 부렸다.
그 결과 과감하게 줄여나가야 하는 토건산업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21세기에 도리어 더 심화되었다. 홍성태 교수에 의하면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에서 토건이 무려 30%를 차지하고 있고, 2005년 GDP 대비 건설업의 비중은 매출액 기준으로 19%(약 142조원), 부가가치 기준으로는 무려 7.8%(약 61조원)에 달할 정도라니 이러한 비중은 개발도상국보다도 높은 것으로서 ‘병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라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다. 수치가 보여주듯 국가경제가 토건에 병적으로 기댈수록 폭주기관차 같은 토건체제를 멈추기 힘들어지고, 그 결과는 바로 초법적인 특별법까지 제정하여 새만금을 강행한 것에서 볼 수 있듯 ‘토목천하’이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텅 비어 있는 지방 국제공항이 지어지고, 관개와 발전을 명목으로 작은 물줄기 하나도 그냥 흘러가게 두지 않게 댐이 지어지고, 주택안정공급이란 명분으로 전국 곳곳에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신도시가 계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1990년, 미소간의 냉전 종식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꿈을 실현시키지는 않을까 기대했던 나는 참 순진했었다. 반세기에 걸친 냉전 기간 동안 군수산업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고 군축은커녕 아예 작심하고 군산업체 중심의 경제로 나가기 위한 마구잡이식 전쟁이 이어졌다. 냉전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1992년의 걸프전부터 최근의 아프간,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안정적인 석유 확보를 위한 것임과 동시에 재고 무기를 소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비대해진 토건업의 위축이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게 되고 결국 토건중심의 경제를 밀고 가기 위해 파헤칠 국토를 찾아다니고 있는 꼴이다. 이런 게 우상이 아니면 대체 무엇인가? 김용철 변호사의 고발로 밝혀졌듯이 삼성이 국민을 우롱하고 국법을 갖고 놀면서 온갖 구역질날 짓을 저질러도 ‘쌤쑹’이 다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말하는 것도 똑같은 맥락이다.
미국이 무려 5천만 명이 보험 없이 살아가며 병나지 않기만을 기도하고 있는데도 보험제약회사들의 로비로 인해 전 세계에서 가장 형편없는 의료체계를 유지해야 하고(마이클 무어의 Sicko가 폭로하듯), 얼마든지 태양에너지중심의 경제로 전환할 수 있음에도 석유업체들의 기득권 때문에 생태 위기를 무릅쓰고 화석연료중심의 경제를 지속해야 하고(Franz Alt의 말마따나), 육식중심의 식단으로 인한 건강 문제, 환경 문제, 기아 문제가 날로 악화되고 있는데도 낙농업계의 로비로 인해 소고기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처럼(Jeremy Rifkin의 지적대로) 우리나라도 토건마피아들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도를 바꾸는 거대개발계획이 발표되는 것이다. 하지만 토건업체와 거기에 빌붙은 정치권만 죽일 놈은 아니다. 웬델 베리(Wendell Berry)가 미국인들이 소비수준을 낮추려 하지 않는 이상 폭력의 경제(economy of violence)를 지속해야 하고 그 결과는 9.11과 같은 재앙의 재발이라고 경고한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국민 개개인이 개발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몽매함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토건마피아의 입김이 가실 리 없다.
또 하나의 독재 종식을 위하여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박정희 독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본군국주의의 장교였던 다카키 마사오가 일본에서 옮겨갖고 온 두 가지 독종 중에 군부독재는 끝을 봤지만 토목독재는 여전히 건재하다. 우리가 대운하를 막아야 하는 것은 역사와 후손과 강산에 대죄를 짓지 않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국토를 할퀴고 혈세를 빨아먹으면서도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제동이 걸린 적 없이 폭주해온 토건마피아와 토건독재를 종식하고 생태복지국가를 향한 국민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1987년 6월이 호헌철폐를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었다면 2008년은 토목독재를 끝내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슈바이처(A. Schweitzer)가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에서 파멸로 치닫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추기 위해 예수가 자신의 몸을 던져 산산조각 냈다고 한 것처럼 우리 시대의 작은 예수들은 토건독재의 수레바퀴를 멈추기 위해 포크레인에 몸을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인천 계양산 골프장 건설을 막기 위해 나무 위에서 다섯 달을 지낸 한국의 줄리안 버터플라이 힐 윤인중 목사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개발주의, ‘돈’이 국익인 세상, 그래서 수억의 돈을 자면서도 벌수 있는 세상, 그렇게 되면 축복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되는 세상, 갯벌과 숲이 한낱 개발의 장애로 여겨지는 이 광폭하고 야만적인 수레바퀴를 향하여 온 몸과 마음을 던질 깨어 있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지금이다.”
코다: 삽을 쳐서 보습을 저 옛날 선지 미가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날을 꿈꾸었다면, 오늘 나는 ‘삽을 쳐서 보습’을 만들 날을 꿈꾼다. ‘삽을 쳐서’가 날뛰는 토건마피아를 꺾고자 하는 것임은 내남이 다 알 것이고, ‘보습’은 그냥 따라오는 관용어구가 아니라 죽어가는 농업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 바람을 담은 것임을 알아주기 바란다.
그때에는 세계 만민이 자기들의 무기를 녹여 평화의 농기구를 만들고, 자기들의 모든 군사비용을 복지사회 건설에 투자할 것이다. 민족들이 더 이상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다. 전쟁의 시대가 영구히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온 우주에 평화가 가득 차서, 모든 군관학교들과 훈련소들이 폐지될 것이다. (미 4:3, 현대어 성경)
그때에는 온 국민이 공사용 삽을 녹여 평화의 농기구를 만들고, 자기들의 모든 토건비용을 복지평화생태사회 건설에 투자할 것이다. 백성들이 갯벌 간척이나 댐 건설 문제로 더 이상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다. 야만적인 토건의 시대가 영구히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온 국토에 평화가 가득 차서, 토건마피아들의 악한 계획이 폐지될 것이다. (미 4:3, 반토건 성경)
박총 (본지 편집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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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군사복합체제로 막대한 경제적 부를 누리며 세계평화에 엄청난 위협을 가하고 있다면, 우리나라는 토건복합체제로 개발이기주의 및 투기경제를 유발하며 생태를 파괴하고 양극화와 빈곤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작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