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tice인사말 ^ㅡ^

지금껏 정말 말도안되는 마음가짐 , 몸가짐으로 한심한 예배를 드렸던 지난 내 삶을 되돌아본다.
2주전에 있었던 학년모임 다음 날 ..바로 주일..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교회를 가지 못했는데, 정말 그 주는 삶이 멍하니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체 바보같이 지냈다. 그 이전에도 많은 날들이 그렇게 지나가곤해서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이 많았지만 쉬이 답을 낼 수 없었다. 그러다 얼핏 주일에 드리는 예배에있어서 뭔가 큰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직감하게 되었다. 단순히 지금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성향이나 , 목사님의 말씀의 문제를 넘어 내 자신 스스로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못하고, 하나님을 높이지 못하며 나를 죽이지 못한 시간이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내 삶이 무기력해지고 사단의 권능에 굴복하고마는 모습으로 후퇴하였던 것이다. 아 지금까지 나의 얼토당토않은 예배를 보고계셨을 주님께 참 부끄럽고, 죄송한마음 가득하다. 부디 내게 주신 예배에 대한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삶에서 실천함으로 내 삶이 하루 속히 나의 문제를 넘어, 주변의 문제를 돌보는 시간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이하 글은 http://blog.naver.com/csfields?Redirect=Log&logNo=60036678492에서 스크랩한 글이다.
송인규 목사님이 쓰신 '아는만큼 누리는 예배'중 일불를 정리한 내용같다.
마음에 땡길 때마다, 출퇴근하면서 하나하나 듣고 있는 새신자반 Tape에서 예배란 무엇인가를 듣다가 마음에 깨달음이 많아서 이것저것 뒤져보던중 발견하게 되었다. 이재철 목사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므로 여기에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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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영혼과 마음과 입술을 천지의 주재시요,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경배하는 것은 다른 모든 피조물로부터 분리시키는 독특한 기능입니다. 하나님은 이 예배를 가장 소중히 여기시며 인간의 가장 고귀한 활동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찾으시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요 4:23,24).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신 가장 큰 소명은 그분을 위해서 일하는 것보다 그분을 예배하고 그분과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원하시고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우리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고 우리를 복 주시기 위함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벧전 2:5)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예배를 드리는 데 보다 깊은 관심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1. 예배의 의미
(1) 예배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경배를 뜻하는 구약의 히브리어 「하라 (chawah)」 또는 「샤하 (shachah)」와 「예배하다」또는 「경배하다」로 번역되는 신약의 헬라어 「프로스 퀴네오 (proskuneo)」는 원래 「절하다, 몸을 굽히다, 엎드리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배 또는 경배란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을(경)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는 것(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배의 대상은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라 나와 당신을 위해 구체적으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2) 예배는 하나님의 인격을 섬기는 것입니다.
섬김, 또는 봉사를 뜻하는 구약의 「아바드 (abad)」와 「샤라트 (sharat)」및 신약의 「라트류오 (latreuo)」와 「레이투르게오 (leitourgeo)」는 예배의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제사장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을 섬기게」하기 위해서였습니다(겔 44:15). 그리고 오늘날에는 믿는 사람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벧전 2:9).
우리는 자칫하면 「주님」보다는 「주님의 일」에, 즉 주님과의 사귐보다 상황이나 일에 시선을 빼앗기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바로 주님의 어떠하심, 즉 인격과 성품을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3) 예배란 최상의 가치를 최고의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원래 영어단어로 「예배(worship」는 앵글로 색슨족의 「weothscipe」에서 온 단어로서 이후에 「worthship」에서 「worship」으로 변화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가치를 어떠한 대상에 돌린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를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사용할 때에는 「최상의 가치(superence worth)를 최고의 하나님께 올려드린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예배에 관한 단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예배는 주관적 경험인 내적 마음의 태도(경외, 존경, 경탄)와 객관적 행위인 외적 행동(엎드림, 섬김, 절함)이 결합하여 전인격적(지식, 감정, 의지)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만을 높이며 하나님과의 사랑관계를 나누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신약의 성도들에게 적용할 때,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이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나타난 신성과 그분의 완전한 구속의 역사를 인식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품을 기억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능력으로 감사와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올려 드리는 행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2. 진정한 예배의 요소
(1) 진정한 예배는 바른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구속받은 자녀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친교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가 하나님 자신과 보다 깊은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른 관계란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가 정결케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그 순간에 우리의 전 존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게 됩니다.
(2) 예배의 깊이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비례합니다.
예배는 신령(spirit)과 진정(truth)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가 영으로 예배를 드린다 하더라도 그 드리는 예배가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역사를 경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영적인 위험에 봉착하게 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말미암은 표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에 대하여 깊이 알아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죄악된 삶을 살았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그러나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1-3)」고 외쳤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제대로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중생의 체험을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깊이 알지 못한다면 결국은 그 삶이 하나님 앞에 예배가 되지 못하므로 그 드리는 예배도 진실 된 예배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예배는 성도의 삶에 실현되어야 합니다.
우리 각 개인이 경험한 신앙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누어지고 함께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체가 우리의 삶 가운데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구체적인 행위를 통하여 열매로 드러나야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예배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 주시고 또한 열정도 주셔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온전한 헌신을 할 수 있도록 그 삶 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 이러한 모습을 이사야 선지자의 부르심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예배를 경험한 이사야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부르심 앞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대답하며 나섰습니다. 이처럼 예배자의 삶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마6:10)」은 기도가 입술의 고백으로 머무르지 않고 예배자의 순종을 통해서 실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4) 거룩한 자만이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 자신의 예배 적 삶의 근본 조건이며 온전한 예배의 초석입니다. 예배가 삶이 되며 삶이 예배가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성도의 삶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거룩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만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만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죄를 품고는 빛 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요일1:6-7).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실 때마다 거룩과 성결에 대해 가르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출28:36-38, 벧전1:15-16).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성결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음을 시사해 줍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성부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예배의 통로가 되시는 성자 하나님이 거룩하시며, 예배를 도우시고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사6:2-3, 계4:8)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예배자가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에 있습니다(살전 4:3). 우리가 거룩하지 않고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으며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경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3. 진정한 예배자가 되려면
우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고전 1:9)은 우리가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1)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영적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롬12:1-2). 그리고 에베소 성도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1-24).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말은 마음의 생각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언행을 낳고, 언행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인격을 낳기 때문입니다(잠23:7).
사단은 우리 인격 형성에 핵심적인 부분인 마음을 지배함으로써 우리 전체를 다스리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 마음을 덮고, 우리 자신이 세상과 육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믿으며, 믿음의 주가 되시며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신 예수를 바라보며 의지할 때 사단의 권세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될 수 있습니다.
(2) 말씀과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되 합당한 기초 위에서 예배하는 자들만 찾으십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면서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고 하셨습니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거짓이 없는 온전하신 분이시므로 예배자는 진리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구속사역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배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배자의 마음속의 동기와 태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항상 그 마음을 진리의 말씀에 두고(시119:11),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경건의 훈련, 즉 성경 읽기와 묵상을 날마다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예배자는 성령 안에서 인도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위해 주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엡5:18).
(3)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배자가 진정한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인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합니다(갈5:22-23). 성령의 열매는 말씀의 씨앗이 우리 마음 밭에 떨어져, 성령의 단비를 맞으며 자라난 인격의 나무에서 열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이 성품이 성도로 하여금 그 삶을 산제사로 드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지된 우리가 과실을 많이 맺으려면 포도나무 되시는 주님께 항상 붙어있어야 된다(요15:5).고 말씀하시면서 주님과의 연합된 삶에 대하여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연합, 즉 하나님과의 관계(Relationship)를 항상 삶의 현장 속에서 확인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승리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며 생활해 나갈 때, 구체적인 인격의 열매가 생활 속에 맺히므로 그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spiritual and reasonable worship)가 되는 것입니다.
4. 진정한 예배의 결과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음에 빠진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신령과 진정으로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이 이루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예배자에게 임하게 되면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롬 14:17)이 넘치게 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미움이나 원망, 경쟁심 같은 묶임이나 악령에 의한 눌림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힘을 받아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도구나 통로로 쓰임 받게 됩니다. 즉, 예배자가 하나님의 현존하심 앞에 설 때 위로부터 힘을 덧입기 때문에 그 힘, 즉 성령의 능력은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라는 두 가지 특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여기서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연결되어서, 성도가 어떻게 이 세상 안에 존재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인격적 나타남이며,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하여 예배자를 통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로서 하나님의 선교를 가속시키는 촉매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선교적 삶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선교(전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진정한 예배의 결과로 다음과 같은 선물을 받게 됩니다.
(1)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예배는 우리가「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이끌어 줍니다. 우리가 「누구를 잘 안다」고 할 때는 그와 사귐이 있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와 만나주시는 하나님은 자신이 어떠한 분이심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그분을 의지할 수 있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예배 적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2)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예배는 올바른 인간상과 자아상을 갖게 합니다. 진실로 나 자신을 알 수 있는 길은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도 알게 되고 우리의 참모습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백성이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하나님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세상 속에 구현하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도록 하는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예배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에 비춰질 때 우리는 우리의 신분을 바로 알게 되고, 그 신분에 맞는 삶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산제사를 드리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가운데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목적이 우리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자로 세우시고자 하는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다스림(나라)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의 삶에는 이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합니다. 성도의 삶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할 때, 빛이 오면 어두움이 물러가듯 사탄의 세력이 물러가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인격(육, 혼, 영)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주권이 예배자의 삶에 채워져 먼저 그 나라를 구하는 삶이 가능하게 됩니다.
(4) 하나님과의 만남의 연속으로서 승리의 생활이 열립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의 삶은 종교성에 의한 율법의 요구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참 진리이신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와 영적 승리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승리를 누리는 예배자의 삶에는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포도나무가 줄기에 붙어 있을 때 영양분을 받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 성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끊임없이 공급되는 생명력으로 풍성한 영적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5) 올바른 세계관과 역사의식을 갖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께서 하신일도 알게 되기 때문에 세상의 참 모습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알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역사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역사의식에도 변화가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는 개인적인 종교성에서 벗어나 공동체 안에서의 자기를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역사를 향한 책임의식을 갖게 되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6)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예배 모임은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귐의 장입니다. 두 사람이 자주 만나면 친하게 되고 서로 잘 알게 되듯이, 하나님을 자주 만나고 가까이 지낼수록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의 인격에 배고 사귐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가 사모하게 됩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의 참모습을 예배자에게 보여주어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게 함으로써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게 합니다. 그리하여 피조물을 신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리고 예배는 이웃과 세상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게 합니다. 예배를 통해 인간과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느끼게 되고, 성령을 통해 품어진 하나님의 마음이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7) 참다운 가치관을 정립시켜 줍니다.
예배는 인격보다는 비인격적인 조건에, 하나님보다는 인간이나 세상에 가치를 두기 쉬운 우리의 타락한 성향을 바로잡아 줍니다. 따라서 예배는 일에 매여 진정한 사귐을 잃어버려 소외된 인간들에게 인격에 대한 관심을 회복시켜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격과 뜻에 대한 가치를 알게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인간의 삶의 궁극적 의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또 기쁘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예배는 우리의 삶을 참되게, 가치 있게, 아름답게 이끌어 주는 축복의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 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8)





